‘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본 영화 특유의 정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인간성과 환경,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류스케 하마구치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반전 없는 긴장감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에 대한 감상, 주제 해석, 인상 깊은 장면 등을 중심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되짚어보며 ‘왜 악이 존재하지 않는가’를 스스로 물어보게 하는
후기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보이지 않는 분노, 말 없는 폭력 – 일본 영화가 주는 묵직한 질문
요란한 폭발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묘하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바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3)’가 남기는 정서다. 이 영화는 일본 현대영화의 대표 연출가 류스케 하마구치 감독의 신작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주목받으며 평단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그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영화 팬들의 기대가 컸고, 개봉 이후 “조용한데 무섭다”, “일본 영화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도쿄 인근 자연 마을을 배경으로, 관광객을 위한 글램핑 시설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마을 주민과 외부 자본의 갈등을 다룬다.
하지만 이 단순한 구도 안에는 현대 사회의 개발과 파괴, 공동체의 붕괴, 타인의 침범과 경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녹아 있다.
이후 본문에서는 이 영화가 왜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지, 그럼에도 왜 끝까지 묵직한 분노를 안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관객으로서 느낀 점들을 후기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영화의 정적인 긴장과 불편한 고요함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단순한 제목은 아니다. 이 영화는 **“진짜 악은 존재하는가?”**, 혹은 **“악이라 믿는 것조차 인간의
시선에 불과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초반은 매우 평화롭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마을, 딸과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 타카미.
그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느긋한 삶을 산다. 하지만 도쿄의 이벤트 회사가 이 마을에 '글램핑 캠프'를 들이려 하면서 분위기는 급속히 무거워진다. 마을 사람들은 반대하고, 회사는 타협하려 들며, 갈등은 은근하게 이어진다. 이 갈등이 한국 영화였다면 아마도 고성이 오가거나, 폭력 사건으로 비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마구치 감독은 그 어떤 직접적인 폭력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 **긴 숲속 숏, 침묵의 대화, 쓸쓸한 눈빛, 그리고 동물의 죽음** 등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무책임을 드러낸다. 그 어떤 ‘악’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도쿄 회사 직원들도 나름의 사정을 갖고 있으며, 마을 주민도 절대 선은 아니다. 모두가 각자의 논리로 행동하고,
그 속에서 진짜 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타카미의 딸과 관련된 장면**이다.
그 장면은 아무런 설명 없이, 단 한 번의 이미지로 전달되는데, 그 순간 관객은 숨을 멈추게 된다. 그 잔혹함은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
무지와 방임의 결과</strong로 남는다. 그리고 영화는 말없이 끝난다. 설명도, 회수도 없다. 그 여운은 오히려 더 무섭다.
악은 없다, 하지만 책임은 존재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단순히 “모두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두 그저 이유가 있을 뿐이며, 악은 그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묵직한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한국식 서사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불친절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 스스로 수많은 해석을 시작하게 된다. “왜 그 장면은 저렇게 처리됐을까?”, “저 선택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게 정말 잘못된 행동이었을까?” 이것이 바로 류스케 하마구치 감독이 일본 영화의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이유다. 그는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말하게 만든다. 정적이지만 거대한 분노, 평화롭지만 불편한 시선.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영화는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마음 속에서 울린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조용한 시간에 집중해서 볼 것을
추천한다. 이 영화는 소음이 많은 날에는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